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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야기

축화혼과 조의

by SmartSympathy 2022. 8. 19.

축화혼과 조의 

퇴근 무렵 상가집에 가려고 준비하며 '조의' 봉투를 급하게 찾았다. 사무실 문구류 함을 뒤지는데 뭉텅이로 있는 봉투는 아무 글자가 없거나 '축화혼'이 새겨 있다. 손글씨에 자신이 없어 이름 석자 쓰는 거 말고는 인쇄된 봉투가 좋다. 그런데 왜 '축화혼'이 이렇게 많은 거지. 결혼할 사람들이 이리 많나. 몇 번이나 봉투 더미를 뒤적이는데 아무리 찾아도 '조의'가 인쇄된 봉투가 보이질 않는다. 곧 나가야 하는데 맘이 급하다. 사람들 손이 쉬 닿는 문구류 함 대신에 문구를 보관해두는 곳도 뒤졌다. 안 보인다. '도대체 담당자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잔뜩 축화혼 봉투만 주문했을까, 요새 젊은 사람들도 없고 누가 결혼을 하기는 하나 '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너무 늦게 가면 장례식장 가는 길이 금새 막힌다. 

  한 구석에서 '조의'가 인쇄된 봉투를 찾아서 겉면에 이름 석자를 급하게 쓰는데 괴발개발이다. 원래 악필이기도 하고 맘이 급해서 그렇다. 봉투에 현금을 넣고 사무실을 나섰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 '결혼을 많이 할까봐 봉투가 쌓여 있는 것이 아니고 결혼식이 드물다 보니 재고로 남은 거구나.' 사람들이 상가집에 갈 일이 많다 보니 '조의' 봉투가 금새 떨어지겠구나 깨달았다. 순간 부끄러웠다. 눈에 보이는 현상만으로 사람들의 생각없음을 지적했는데 알고보니 내가 바보였다.    

  선덕여왕 일화에 모란꽃 그림에 대한 장면이 있다. 당나라 태종이 모란 그림이 그려진 한 폭의 병풍과 모란 씨 석 되를 보내왔다. 모두 이쁜 꽃이라며 감탄을 할 때 당시 공주였던 선덕여왕은 실망했다. '꽃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지만 벌과 나비가 없는 걸로 보아 향기가 없답니다.'

  현상의 이면에서 본질을 깨닫거나 두어 수 앞을 볼 수 있다면 화 낼 일이 줄어들겠지. 이런 통찰의 능력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