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동아리 모임에 제출하기 위해 서평을 작성했다. 초안에 대해 몇가지 조언을 했고 반영본에 일부 수정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제출되었다.
사람들은 약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있을까요? 아마 대다수 신약 개발 과정은 체계적인 과학 연구를 기반으로 한 신중한 개발 계획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약 연구원인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답하며 본인을 ‘신약 사냥꾼’이라고 칭합니다. 이는 대형 제약회사의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에 신약을 찾는 근본적인 기술이 끈질기게, 매우 다양한 화합물들을 조사하여 하나라도 효과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신약 개발의 과정을 거대한 바벨의 도서관에서 몇몇 변론서를 찾아내는 것으로 비유합니다. 생물학, 화학, 임상병리학 등을 지식을 바탕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시도를 하며 찾아다니고, 스쳐 가는 운을 잡아, 개발하는 과정은 신약 개발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과 꽤 다릅니다.
<인류의 운명을 바꾼 약의 탐험가들>(도널드 커시 외, 세공서적, 2019)의 저자 도널드 커시는 35년 이상 경력을 가진 베테랑 신약 연구자와 전문 과학 작가의 조합으로, 약학 연구의 발전 과정을 통시적으로 다룹니다. 신약을 ‘발명’하기보다는 ‘발견’하는 것에 의존하던 ‘식물의 시대’, 돌턴의 원자설을 받아들인 후 발달한 합성화학을 이용해 신약을 발명해낸 ‘합성화학의 시대’, 항생제가 활발하게 개발되던 ‘흙의 시대’, 유전공학의 시대와 함께 시작된 ‘유전자 의약품의 시대’로 분류하여 각 시대를 대표하는 의약품들의 역사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 중 많은 사람에게 익숙하고, 합성 과정이 잘 알려진 아스피린의 개발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19세기 중반, 합성화학을 이용해 개발한 합성염료로 큰 성공을 한 염료회사 바이엘 앤 컴퍼니의 경연진이었던 카를 두이스베르크는 합성화학의 발전에 힘입어 염료가 아닌 의약품을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화학을 이용해 기존의 약을 더 효율적이고 일관적으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던 시류를 따르지 않고, 합성화학을 이용해 새로운 의약품을 발명하고자 하였습니다. 그가 발전시키고자 시도했던 의약품은 살리실산입니다. 살리실산은 수천 년간 열과 통증, 염증을 줄이는 데 쓰였던 흔한 약으로 위장 자극, 메스꺼움 등의 불쾌한 부작용이 강했는데, 두이스베르크는 이 부작용을 화학적으로 개선해보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두이스베르크는 화학팀과 제약팀으로 구성된 제약연구팀을 구성했습니다. 화학팀장이었던 아이헹륀은 연구 과정에서 모르핀과 살리실산을 이용해 두 화합물을 만들어냅니다. 그 결과 만들어진 두 화합물 모두 초기 동물 실험을 통과하였으나 예산 부족을 이유로 살리실산을 이용한 화합물의 임상실험이 거절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고 판단한 아이헹륀은 관리 부서 몰래 연구하고 임상 실험을 진행하여 살리실산의 진통, 해열 효과는 유지하면서 뚜렷한 부작용이 없다는 결과를 받고, 그 결과를 두이스베르크에게 전달하였습니다. 결국 두이스베르크는 두 물질 모두의 임상실험을 승인하고, 이후 대중에게 판매하였습니다.
아스피린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는 약을 독창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연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특정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목적으로 인간이 직접 화학적으로 구조를 바꾸어 만들어 낸 약품은 아스피린이 최초로, 이는 약을 바라보는 관점의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아스피린은 뛰어난 효능뿐 아니라 최초의 합성의약품으로서 합성의약품의 시대를 연 약이라는 의의를 지닙니다. 이후 항생제 개발의 시대인 흙의 시대, 유전공학의 발달로 유전자 의약품 시대가 열리며 현재의 약학 연구 모습을 띠게 됩니다.
두이스베르크는 단순히 운이 좋아 아스피린이라는 결과를 얻어낸 것일까요? 두이스베르크가 다른 약품보다 비교적 간단한 구조를 가진 살리실산을 첫 번째로 택한 것은 어쩌면 운이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화학 팀장 아이헹륀이 무수히 많은 시도 끝에 살리실산을 이용한 화합물을 합성해내고, 몰래 연구를 이어 나가 결국 아스피린이라는 열매를 맺은 것은 결코 단순히 운은 아닐 것입니다.
머리말과 책 중간중간에서 작가는 신약 개발의 성공 노선이 있다는 통념을 부수기 위해 이 신약 개발 과정이 운에 크게 의존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의 식물들을 직접 먹어보며 알아보던 5000년 전과 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운이 좌우할지라도, 그 순간을 위해 무수히 많은 관련 지식을 쌓고, 수많은 사람과 협업하고, 무수히 많은 시도를 하며 스쳐 가는 우연을 잡아내는 노력을 통해 우리는 약국 속 수많은 의약품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연구원이 수많은 시도를 하며 신약 개발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숲을 헤매고 있을 것입니다. 구급상자 속 평범한 의약품들 뒤에 그러한 노력이 있었음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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